파인드미라이프쉐어 (2022/04)

장아현
2022-04-26

평소에 책을 즐겨 읽지 않았더라도 괜찮습니다 :) 가벼운 마음으로 발제를 준비해서 와주세요!
2부에서는 책 바꿔 읽기 활동이 진행됩니다. 책장에 오래 자리하고 있는 구입해 둔 책 중 한 권을 표지가 보이지 않도록 포장해서 들고 와주세요:)


김혼비 <책으로 인생이 바뀐다는 것> 발췌문


 앤서니 호로비츠가 쓴 소설 <맥파이 살인 사건>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몰라도 책으로 인생이 바뀌려면 떨어지는 책에 맞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웃음을 베어 물며 고개를 끄덕인 것도 잠시, 회사까지 걸어가는 내내 이 말을 조금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

 나는 떨어지는 책에 맞은 적이 있다. 당일에는 약간 욱신대기만 했는데 다음 날 일어나니 왼쪽 발가락과 발등이 크게 부어올라 있었다. 다들 뼈에 금이 갔을지도 모르니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한다고 했다. 부은 정도로 보나 떨어진 책의 무게로 보나 일리 있는 충고였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저항감이 마음을 장악했다. 같은 무게의 아령이나 공구에 맞았다면 바로 납득하고 병원에 갔을 텐데 이상하게도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책에 맞아 뼈에 금이 간다는 것은 순두부에 손을 베어 피가 난다는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다음 날 발의 상태는 더욱 안 좋았다. (중략) 다다음 날도, 다다다음날도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결국 그 주에 예정되었던 태국 출장을 취소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병원에 갔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네 번째 발가락이 발등과 이어지는 지점에 금이 가 있었다. 계속되는 의사의 설명과 함께 밀려드는 배신감이란. 내가 너희를 그렇게 믿었는데! 책에 비하면 도끼는 얼마나 괜찮은 녀석인지. 믿는 도끼에 발등이 ‘쪼개진다’도 아니고 ‘잘린다’도 아니고 그냥 ‘찍히는’ 정도라니. 종이로 만든 책도 이런 식으로 발등뼈에 금을 내는데 도끼처럼 예리한 날을 가진 무거운 쇠붙이가 발등에 저지르는 일치고는 제법 관대한 처사 아닌가. 그 정도면 꽤 믿을 만했던 도끼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맥파이 살인사건>의 구절처럼 책에 입은 물리적 위해가 도끼에 대한 재평가 외에도 내 인생을 바꾸었을까.

 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코끼리 조련사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그는 당시 국왕이었던 푸미폰 아둔야뎃의 신임을 받아 국가적 행사가 있을 때마다 흰 코끼리 떼 퍼레이드를 주관하는 총책임자였고, 놀랍도록 매력적이고 존경스러운 그와 불같은 사랑에 빠져 그 길로 태국에 정착, 태국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 코끼리 조련이 심각한 동물 학대라는 걸 깨달음과 동시에 그때부터 그와 그 문제로 번번이 충돌을 빚다가 마침내 가슴 찢어지는 결별을 한 뒤 세계동물보호단체에 가입, 코끼리 해방운동에 앞장서며 한때 연인이던 그와 정치적 원수로 평생을 살게 될 얄궂은 운명……이 예비되어 있었다면 떨어지는 책에 맞아 태국행 비행기를 타지 못 했던 것이 나의 인생을 바꾸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중략)

 그러니까 하필 그 시점에 떨어지는 책에 맞은 사건이 내가 모르는 사이 어떤 인생의 가능성을 닫아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그게 무엇인지 나는 평생 알 수 없을 테고, 그저 내가 아는 한에서는 한 달간 발이 불편했다는 것 이외에는 크게 달라진 게 없었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결국 무엇을 믿을지 내가 선택하기에 달렸다. 떨어진 책으로 인해 사라진 어떤 인생을 믿을지,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간 인생을 믿을지.

 이것은 ‘떨어진 책’뿐만 아니라 ‘읽은 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읽은 책이 내 인생을 바꾸었는지 아닌지도 내가 무엇을 믿을지 선택하기 나름이다. 인생의 흐름이 살짝 바뀌는 정도로는 성에 안 차는 사람이 있고 그것만으로도 인생이 바뀌었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인생의 흐름을 바꾼, 조금 거창하게 말해서 ‘인생의 책’이라고 꼽을 만한 책들이 분명히 있다.

 알렉상드르 마트롱이 쓴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는 스피노자의 <에티카>와 더불어 존재하는지도 잘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눈앞에 열어줬다. 이 책이 나의 영혼 깊숙한 곳에 미친 영향에 대해 쓰자면 글 한 편을 따로 쓰는 것으로도 부족하기에 섣불리 시작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특히 이 책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다른 책들도 같이 공부하며 읽어야 드디어 그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이 책이 나에게 안겨준 일차원적인 변화에 한해서만 말하자면, 그것은 다소 뜬금없게도,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강렬한 소망을 품게 만든 점이다. 

 T와 서재를 합친 7년 전만 해도 철학서가 가득 꽂혀 있는 T의 책장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저 기호와 기표들의 저장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스피노자를 만나면서 그 300여 권의 책이 한꺼번에 생생히 살아나 나의 삶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중략) 이 책들은 저마다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품고 있을까. 이 중 몇 퍼센트나 읽을 수 있을까. 마트롱의 책을 몇 번이나 더 읽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삶에 가능한 한 오래도록, 꼿꼿하게 머물고 싶어졌다. 어떤 좋은 책들은 사람을 오래 살고 싶게 만든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빠뜨릴 수 없다. 누군가 ‘죽을 때까지 단 한 권의 책만 읽어야 한다면 어떤 책을 고를 것인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 일말의 망설임 없이 꼽았던 책이다. 이 책은 책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우주이다. 배경이 우주여서가 아니라, ‘책’이라는 존재에 기대하는 모든 것이 다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중략)

 이렇게 인생의 책 두 권을 꼽아놓고 보니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맥파이 살인 사건>의 구절에 대항하고자 고른 이 책들이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그 구절에 무게를 더 실어주기 때문이다.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는 하드커버에 920쪽짜리 책이다. 읽었을 때만큼이나 맞았을 때 인생을 바꿀 만한 책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가 없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한술 더 뜬다. 하드커버에 1,236쪽이다. 읽었을 때보다 맞았을 때 인생을 바꿀게 더 분명해 보이는 책이다. 아, 정말 모르겠다. 역시 읽는 것보다는 맞는 쪽이 더 강력할 수밖에 없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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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가요? 내 인생의 첫 번째 책을 꼽아본다면 어떤 책을 말할 수 있을까요? (첫 독서의 기억을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2. 내 인생을 바꾼 책이 한 권쯤 있지 않나요? 나에게만큼은 운명처럼 어느 순간 찾아와 준 책이 있었을 겁니다. 그 책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3. 저는 정답이 없는 문제로 고민이 될 때, 책을 찾곤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순간에 책을 찾게 되나요? 나의 인생 책 한 권을 소개해주세요.


4. 내가 가져온 책은 나에게 어떤 책이었나요? 나눠드린 메모지에 간단하게 적어주세요:)